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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신 최현열 선생, 수요집회 일본대사관 분신에서 남긴 유서와 영결식

[분신 최현열 선생, 수요집회 일본대사관 분신에서 남긴 유서와 영결식]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예전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있었다. 

이 수요집회에서 최현열씨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분신하였다. 최현열은 분신 후 급히 옮겨졌으나 21일 오전 6시 이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사인은 폐혈증이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한 최현열선생은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도 가지고 있다. 최현열은 나이 81세로 그의 부친은 1932년 영암 농민 독립만세 시위사건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최병수 옹으로 알려졌다. 


일본대사관 분신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자하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9일만에 결국 사망한 최현열 선생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서 일제를 타도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과제라고 유서를 남겼다. 



(고 최현열 선생의 분신장면. / 출처: 한국일보)


최현열 선생은 유서어ㅔ서 바른 역사를 찾기 위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집회를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하소연하지만 현실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한탄스럽다고고도 유서를 남겼다. 


한편 일본대사관 분신이 있기 전 최현열선생은 정부에 대한 원망도 남겼다. 광복을 하고 나라를 되찼았어도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일본에 동조한 부유층들이 대한민국의 상류층과 지도층이 되어 나라의 실권을 쥐고 다스린다는 것이다. 최현열 선생은 유서에서 독립유공자 자손들은 힘들게 살고 있고 나라는 강대국의 도움을 받는 원통한 민족이 되었다고 했다. 



불미스러운 일도 벌어졌다. 수요집회 분신사건에서 결국 사망하게 된 최현열의 임시 분향소를 유가족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설치하려고 하자 도로를 불법 점거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막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영정사진, 촛대 등도 수거해 가 버렸다. 결국 대치 속에 유족측은 오후 5시께에나 일본대사관 맞은 편에 영정사진을 붙이고 임시 분향소를 차릴 수 있었다. 


23일 오전 광주 서구 매월동에 있는 천지장례식장에서 최현열 선생의 영결식이 벌어졌다. 이어 광주시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노제가 진행되었다. 일본대사관 분신으로 최현열의 유서는 광복 70주년이 지난 한국에서 호된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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